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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니박 특별 초대전: 낯선 이국 풍경 - 가보지 않은 길
풍경화는 풍경을 만든다

우리가 자연 풍경에 감탄할 때 흔히 “그림같이 아름답다.”라는 표현을 자주 하는데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함의가 있다. ‘그림같은 즉, 픽처레스크(picturesque)’라는 단어는 18-19세기 낭만주의가 유행하면서 풍경 여행 지침서에 들어갔던 화가들의 그림같은 풍경화를 일컫는 말이었다. 또한 풍경화가 일찍이 발전한 동양에서는 자연에 대한 문학적 상상력과 예찬이 풍경 감상의 패턴이 되고 이것이 적절한 지점과 조우하며 풍경화가 탄생하는데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좋은 풍경을 선별하는 눈을 만들어 주었다.

무심한 자연이 풍경으로 탄생하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예술가들의 새로운 시선’, 예술가들이 고안해낸 일종의 풍경감상법 덕분이다.

현대 예술에 있어서 인간의 눈보다 정확한 카메라의 눈과 놀라운 편집 기술이 만들어내는 ‘그림같은 풍경 이미지’로 회화의 풍경화는 완벽하게 대체되었는가?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대상을 보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은 나만의 체험이 투사된 이미지를 원하는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은 카메라처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으로 본다. 시간에 따라서, 감정에 따라서, 경험에 따라서 같은 풍경도 우리는 다 다르게 본다. 순간의 시각을 담아내는 사진과 달리 회화는 그 순간의 모든 공감각적 경험과 함께 삶의 경험뿐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경험까지 담아낼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풍경을 그림으로 보고 싶어하는 이유이다



낯선 이국 풍경의 탄생


구상보다는 평면을 추구하는 비구상과 추상이, 나아가 평면 작업보다는 탈평면 작업이 주류가 된 지 오래인 미술 현장에서 추니박은 참으로 오랜 기간 동안 풍경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열심히 바라보는 것은 풍경의 풍부한 표정을 읽어내는 비결이다. 사심 없는 담백한 마음만으로는 풍경의 깊이를 볼 수 없다. 추니박은 지난 30여년 동안 한국의 산과 들, 섬을 여행하며 사생을 해왔고 최근 호주와 미국으로의 여정들은 여행이라기 보다는 세상바라보기의 연장이었다. 매일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매일 다른 바람과 태양빛을 느끼고, 매일 다른 감정과 경험을 체험했다. 그는 매일 낯선 풍경에 다가가고 그렇게 읽어낸 다양한 표정을 화폭에 옮겼다. 이 때 실경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그 위에 양식화와 해석의 이차적인 질서를 더한다. 그 과정에서 추니박의 낯선 풍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카메라에 의해 쇠락했다고 믿었던 픽처레스크의 풍경화는 이제 추니박의 주관적 개입으로 이색적으로 풍경화(化)된다. 자신만의 독특한 필법과 화면 구성, 엉뚱한 오브제 배치 등으로 한국화에 담아두기에는 그의 풍경화는 낯설다. 풍경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제작하고 또 혁신함으로써 탄생된 그의 낯선 이국 풍경은 자연을 대상으로 모방되고 복제된 것이 아니며 그렇기에 그의 낯선 풍경화는 낡지 않았고 진부하지 않다.

시대마다 추구하는 리얼리티의 본질이 달랐을 뿐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리얼리즘의 본질이 형식주의에서는 ‘낯설게 하기’에 있다. 리얼리즘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려는 끊임없는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추니박의 리얼리즘이란 단순히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풍경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그때까지 실재로서 존재했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던 풍경을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실제와 내면에서 매일 풍경과 결연을 맺는 추니박은 언제나 낯섬과 조우하고 투쟁하는 내적 리얼리스트(internal realist)이다.



시간을 읽는 시선 – 풍경 속으로 들어가 시간을 읽다


동양의 산수화는 원근법의 구속을 받는 서양화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풍경감상법을 담고 있다. 와유적 풍경 이 그것인데 이는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사용하듯이 보는 것”으로 풍경 속에 들어가 즐기는 추니박의 낯선 풍경은 와유적 공간을 구성한다.

한편, 추니박의 이번 낯선, 이국풍경展에서는 색그림이 많다. 일찍이 겸재 정선이 ‘인왕제색도’에서 선보인 흰 기암을 검게 칠한 것은 대상의 본질을 공간적 측면에서뿐 아니라 시간적 존재로서의 변화를 담기 위함이었다. 먹을 사용하여 검게 표현하였지만 이는 분명 색이 들어간 비에 젖은 검은 기암이다.

시간성으로써 대상에 다가간 추니박의 해석이 이번 낯선 이국 풍경展에서의 색그림이다. 먹 안에 감춰져 있던 색을 꺼내어 펼치니 독특한 필법과 와유적 공간과 구성이 만나 파편적 아름다움이 되기도 하고 대상에 대한 공감각적 서정으로 묵직하게 남는다. 이는 인간의 역사적 시간성이 바로 이해 자체의 존재방식이라는 하이데거식 관점의 예술미의 표현이다. 대상을 유일한 존재로서 인식하기 위한 시공간적 해석이 동양과 서양의 세계관과 표현방식으로 혼연하는 그의 사유로써의 풍경을 읽는 방식이다.

그의 수묵은 그래서 이제 색이 되려 한다.



갤러리 마리 아트디렉터 차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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