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춘 Park, Byoung-Choon

1966 충북 영동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 졸업
전 덕성여자 대학교 동양화과 교수




‘여행, 기억 그리고 풍경’


나는 계절이 바뀌는 순간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것은 마치 영화에서 총에 맞아 쓰러지는 사람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준다.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되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흐르는 시간을 보려 해도 우리는 쉽게 그것을 볼 수 없다. 다만 매일매일 같은 장소에 앉아 자연을 바라보는 자만이 그 놀라운 순간을 만날 수 있다.

나는 봄과 가을의 숲에서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는 일을 몇 년째 지속 해오고 있다.

봄의 숲에서 노란빛에 가까운 연두 빛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것은 길어야 하루정도 이다. 숲으로 들어오는 빛이 연두색의 나무순을 어루만지면 나는 그림을 그리다 말고 그냥 멍하니 그 속에 빠져있었다. 그 빛과 색은 하루하루 다른 빛을 띠며 초록의 여름으로 흘러간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의 어느 순간에 초록의 나뭇잎이 노란색과 연두 빛으로 화려하게 수를 놓고 한 순간 주황빛을 뿜다 이내 갈색으로 죽어간다. 그 순간은 너무도 짧아서 시간의 덧없음에 슬픔마저 느끼게 된다.

자연의 변화는 색의 변화다.
나무와 바위가 자연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면 자연의 변화하는 색은 자연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운명을 자연의 사계절에 비유하는 것이 아닐까!
그 피의 흐름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세상은 삶과 죽음의 끝없는 윤회를 반복하며 생명으로 넘쳐나게 된다.

최근 몇 년, 나는 많은 시간 숲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숲을 바라보고 숲을 걷고 숲을 즐기고 숲을 그렸다. 그런 경험을 통해 내게 기억된 것은 물감에 없는 자연의 색이다. 미묘한 색의 변화 예를 들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연두색과 초록색, 노란색과 주황색, 붉은색과 갈색의 차이를 보면서 나는 어느 계절 어느 순간의 색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체득된 자연으로부터 얻은 색을 나의 그림에 담아내고 있다.

여행은 나에게 산소와 같은 것이다.
여행을 통해 나는 숨을 쉬고 내 자신을 치유한다.
또한 새로운 낯선 곳의 풍경만큼 익숙한 풍경이 선사하는
포근함, 그래서 나는 나의 정원으로도 여행을 간다.

‘여행, 기억 그리고 풍경’은 지금 나의 여기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묘사이다.


- 2021. 11 추니박 작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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